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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마도

대마도여행, 한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대마도의 숨은 비석과 역사 이야기

   

   

   

   

   

   

   

   

   

   

일제 시대 대마도에 잡혀온 한국인들이 명절때가 되면 바다 건너 바라다보이는 한국땅을 향해 망국의 서러움을 달래던 .

   

한국의 탑골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건축 재료 또한 한국에서 공수해와서 1997년에 완공한 한국전망대.

   

 

 



   

   

   

날씨가 궂은 탓에 이곳에서 부산을 보기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맑은날, 맑은 저녁에는 부산이 잘보인다고 하네요.

   

정말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흐릿날이 원망스러울뿐..

   

 

 

 



   

   

   

한국전망대 앞에는 '조선국역관사 순난지비' 있는데, 1703 부산을 출발해 대마도로 오던 3척의 역관사 배가 침몰한 것을

   

1991년에 이르러서 112명의 수장된 역관사들과 선원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역관사란 오늘날 외무고시에 합격한 직업 국가공무원이라고 보면 되는데, 국사가 있을때 파견하는 통신사와는

   

조금다른 성격이 관리들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암튼 이들은 대마도에 새로 취임한 도주를 축하하기 위해 오던 길이었다니..

   

   

 



   

   

   

   

우리가 알고 있는 통신사도 임진왜란 전에는 그냥 통신사로 불리었고, 왜란 후에는 조선통신사라고 불렸다고 하네요.

   

조선통신사를 기념하기 위한 조선통신사비는 대마도의 이즈하라 시내에 있으니 비도 소개해드릴께요.

   

 

 

 



대마도로 오던 역사관들이 타고 있던

   

   

   



   

   

   

   

최근에 와서야 비석이 세워진 연유는 모르겠으나, 한국이 보이는 이곳에 세워진 것으로도 마음이 아프네요,

   

   

 

 



   

   

   

한국전망대 앞에 들어가면 부산지형의 모형과 맑은날 찍은 것으로 보이는 부산의 불빛 사진을 있어요.

   

저렇게 부산과 대마도가 가깝다니.. 망원렌즈로는 광안대교도 잡힌다고 하니 정말 가깝죠?

   

 

 

 



   

   

   

그리고 한국전망대 주변에는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가 심어져 있어서 ~해요.

   

근데 대마도시에서는 무궁화를 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

   

 

 

 



   

   

   

   

   



   

   

   

한국전망대는 히타카츠항이 있는 가미쓰시마마치의 히타카츠에 있어요.

   

   

   

 

 

   

   



   

   

   

   

한국전망대의 아래쪽 일본군사시설이 있는 부근, 와니(우라)마을에는 왕인박사비가 있는데, 정말 생뚱맞은 곳에 있어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이곳에 비석이 세워져있는지 모를것 같습니다.

   

왕인박사는 일본에서는 '와니우라'라고 불리고 있는데, 탓에 이곳 마을도 와니우라 마을이라고 불리는듯.

   

왕인박사가 일본에 전한 책으로는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왕인박사가 일본에서 활동한 시기는 4세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외에도 왕인박사가 대마도에 데려간 사람은

   

오경박사와 재봉녀, 직공, 야공, 양주자, 도공, 완공, 화공, 금공, 의사 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당시에 미개한 일본에 문학에서 문화, 기술 등을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왕인박사의 무덤은 일본 히라타카에 있다고 하네요.

   

 

 



   

   

   

비석은 2007년에 세워졌는데, 와니우라 마을이 왕인박사를 상징하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백제에서 건너온 왕인박사.. 왕인박사의 기록은 일본서기 등에서 있다고 하네요.

   

 

 



   

   

   

   

그래도 관리되고 있는 비석과 비석 주변이 조금 위안은 되는것 같습니다.

   

   

   

   

   

   

   

   

   

   

비석은 아니지만.. 비석만큼 중요한 풍포 대적.

   

일본이 1905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2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있게 되는데,

   

1928 대마도에 5년에 걸쳐 완성한 포탑 포대입니다.

   

   

   

 

 

   

   

   

어두컴컴한 지하요새같은 이곳에 들어가면 1928년에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반듯반듯한 모습을 보면

   

일본이 얼마나 무서운 군사력으로 세계를 장악하려 했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풍포 대적과 같이 대포를 발사하는 곳은 대마도에만 12곳이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포포탑을 건설하는데 강제 노역됐을 조선인들을 생각하면 들러야 장소로 생각되구요.

   

 

 



   

   

   

지금은 세월에 묻혀 이끼가 잔뜩낀 포대로만 남아있지만, 이렇게 무서운 곳을 12곳이나 만들어서

   

대체 무얼하려 했던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포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원형 모양의 구멍 형태로 만들었고,

   

여기에 설치된 포듣 다른 포에 비해 위력과 발사거리가 카농포를 설치했다고 하네요.

   

 

 



   

   

   

회의실, 화장실, 주방 전쟁에 필요한 시설은 모두 갖추었던 풍포 대적.

   

 

 



   

   

   

   

한국전망대에서 내려오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패키지 투어를 하면 들려볼 있을듯합니다.

   

   

   

   

   

   



   

   

   

비가 본격적으로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던 대마도에서의 마지막날.. 히즈하라 시내관광을 하던 중에 만난 고려문.

   

고려문은 1678년에 사지키바라성의 3문을 고려문이라고 칭한데서 유래됐지만, 문을 화재로 소실됐고,

   

문을 1987년에 이곳에 다시 건립해서 현재에 이른다고 하는군요.

   

 

 



   

   

   

   

대마도역사민속자료관 앞에 있어서 그냥 지나치면 일본 문화재이겠거니.. 해지만, 앞에는 분명 '고려문'이라고 써있답니다.

   

특히 문의 목적은 조선통신사를 영접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조선문이 아닌 고려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가 대마도를 지배했었기때문이 아닌가.. 살짝 추측도 해봅니다.

   

 

 



   

   

   

   

고려문의 옆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있는데, 조선통신사는 국사를 공부한 분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있을거예요.

   

조선이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한 것은 12회로 한시, 그림, 유학 등을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죠.

   

일본에 파견된 마지막 조선통신사는 에도까지가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국서만 전달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조선의 영향을 우려한 에도막부가 대마도에까지만 그들을 영접하고 돌려보내것이라고 하는군요.

   

   

 



   

   

   

대마도역사민속자료관에는 대마도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관계된 자료들도 전시하고 있는데,

   

한국어가이드는 없는 관계로 일본어를 조금 아신다면 들러봐도 좋을것 같은 무료박물관입니다.

   

,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고, 입구에서 한국어 브로셔는 나눠주므로 챙기시는게 좋아요.

   

 

 

 



   

   

   

, 입구에서는 조선통신사의 그림이 그려진 스탬프도 준비되어 있으니 찍어가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죠?

   

   

   

   

   

   



   

   

   

이즈하라 시내에는 하나의 가슴 아픈 역사에 관련된 비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덕혜옹주비'입니다.

   

덕혜옹주비는 티아라 쇼핑센터에서 그리멀지 않은 가네이시조라는 성곽의 안쪽에 있어서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덕혜옹주라는 사람이 낯선 분들도 많을텐데, 최근에 출판된 '덕혜옹주'라는 책과 만화책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거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고종황제의 후궁이었던 양귀인에게서 태어난 공주로

   

정실 부인이 아닌 후궁의 딸이기에 옹주라고 지칭하게 됩니다.

   

매우 영특해서 고종이 아꼈다고 하지만, 일본이 조선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일선공동체를 앞세워

   

13살의 덕혜옹주를 강제로 일본의 동경에 있는 아오야마 여자 학습원으로 보내지게 되는 비운을 겪습니다.

   

 

 



   

    

   

게다가 일제의 내선일체의 희생양으로 대마도 도주의 후손인 종무지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사이에 딸도 태어나게 되지만, 불행히도 딸은 자살 (혹은 실종)됐다는 슬픈 이야기..

   

이후로 정신병이 생긴 덕혜옹주는 남편의 냉대와 일본제국주의의 파멸로 이혼을 당하게 되고,

   

외롭게 정신병원에서 생을 보내는 도중, 조선일보 기자인 김을한 기자의 도움으로 1962 우리나라로 돌아와

   

창경궁 낙선재에서 여행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군요.

   

 

 




   

   

사실 덕헤옹주가 대마도에서 살았던건 아니고, 대마도 도주의 후손과 결혼했던 탓에 대마도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방문을 대마도의 동포들이 기념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1931년에 세운 봉축비가 바로 비석이구요.

 

 

 

 


   

   

    

비석 하단의 켠을 보면 그때 돈을 모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있음을 있어요.

   

 

 



   

   

   

망국의 서러움을 이렇게 봉축비라도 세워서 달래보고자 했던 조선인들..

   

그런 조선인들을 한없이 안타까워했던 덕헤옹주.. 아픔이 고스란히 비와 함께 전해지는거 같아

   

저도 모르게 가만히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어요..

   

   

   

   



   

   

    

약간 짠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던 .. 이번엔 최익현 순국비를 향해 갑니다.

   

 

 

 

 

   

   

   

   

   

   

   

   

   



   

   

   

이즈하라 시내의 수로를 건너 골목골목으로 들어가면 백제의 비구니 법명 스님이 지었다는 '수선사(修善寺)' 만날 있습니다.

   

656년에 지어진 절로 최초의 명칭은 수선암으로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곳입니다

   

 

 

 



   

   

   

오래된 절인만큼 절주변에는 납골당도 많이 있는데, 일본은 화장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묘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이렇게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묘를 주로 사용해서 묘지 아래에 가족들의 유골을 넣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라고도 하네요.

   

그래서 묘비에는 주로 'OO家之墓', OO 가문의 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선사 내에는 엄마로서 가슴이 아파오는 불상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불상을 일본 여행시에 간혹 보곤 했는데 정막 불상에 대해서 대마도에서 처음 알았어요.

   

 

 



   

   

   

일본의 지장보살(地藏菩薩 ) 아이들을 보호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는데, 죽은 아이나 사산된 태아를 보듬어주는 보살이라 합니다.

   

불상에 보통 턱받이를 하거나 옷을 입혀놓는 것이 특징인데.. 가이드님한테 사실을 전해듣고 불상을 볼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앞에 놓여져 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들이 놓여져 있는걸 볼때 눈물이 글썽.

   

 

 



   

   

   

그러나 마음이 아픈건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하여 음식을 거부하다 생을 마감한 순국지사인 최익현 선생의 .

   

위정척사운동과 항일구국운동을 벌이다가 대마도에 이송되어 아사순국했던 최익현 선생의 유해가 4일간 안치됐던 수선사.

   

 

 



   

   

   

대마도의 번화가 켠에서 무궁화에 둘러쌓인 순국비.

   

 

 

 



   

   

   

덕혜옹주비와 최익현 순국비를 둘러보는 날은 하필 비까지 더해져 슬픔을 더했습니다.

   

 

 



   

   

   

   



   

   

   

   

우리나라 스님이 지은절.. 대마도와 관련있었던 역사적 인물들의 비석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대마도 여행을 다녀오면 분명 마음속에 솟구치는 무언가를 발견할 있는 여행이 될것입니다.

   



<본 여행은 하나투어의 지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스티커와 '여행 이야기' 더 나눠보세요!

   

http://www.youtube.com/stick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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