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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백두산

두만강, 더이상 푸르지 않지만 .. - 시인 윤동주의 자취를 좇다

 

 

 

 


* 대성중학교(현 용정중학교)

 

연변은 조선반도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자연조건이 유사하였다.
1860년대부터 함경도, 평안도 등 서북지방의 조선 농민들은

연속되는 자연재해로 생계를 유지 할 수 없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연변으로 이주하였다.

연변에 정착한 조선족 이주민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조, 옥수수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동시에 이 지역에서 최초로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조선족 이주민들의 성공적인 벼농사는 결국 연변지역의 밭농사 위주의 농업경제를 벼농사로 전환시켰으며,

척박했던 연변지역의 황무지는 점차 비옥하고 풍요로운 옥답으로 변해갔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되지 항일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연변으로 망명한 항일운동가들은

조선족 이주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각지에 민족학교를 설립하였다.

1906년 이상설 등이 연변 근대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명동학교, 광성학교, 정동학교, 창동학교 등이 설립되었고

이어 기독교, 대종교를 비롯한 종교단체와 여러 항일운동가들이
은진학교, 대성학교, 동흥학교 등을 설립하면서 민족교육은 신속히 발전하였다. 

연변지역의 민족교육은 주로 민족사립학교를 통하여 근대문명을 전수함과 동시에
항일민족의식을 고취시켜
항일투쟁을 이끌어나갈 수많은 항일투사들을 양성하였다.

그 결과 연변지역의 조선족사회는 1919년 3.13반일시위운동, 봉오동, 청산리전역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데

튼튼한 사회적기반이 되었으며, 연변지역은 항일무장 투쟁의 주요한 근거지로 자리매김하였다.

 

 

항일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지금의 용정시 지신진 명동촌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명동학교와 은진학교, 평양숭실학교, 연희전문학교 등을 거치면서
식민지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대인식을 키워나갔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의 불안과 절망, 그리고 광복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중 대표작 "서시"를 비룟한 여러 작품들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내면에 투철한 항일민족의식을 소유한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사상범으로 투옥되어

꿈에도 그리던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안타깝게 순국하였다.

 

 

 

 

 

▲ 용문교

대성중학교로 가는 길에 지나친 용문교.

 



 

▲ 용문교 옆으로 보이는 해란강

 

 



 

▲ 용정중학교(구 대성중학교)

 

 


 

▲ 용정중학교는 용정에 현재 남아있는 6소중학교 중에 유일하게 유적이 남아있는곳이다.

 



 

▲ 일제시대의 건물을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가이드를 동행하여 내부를 둘러 볼 수 있다.

 

 



 

▲ 대성중학교는 윤동주가 거친 학교로 입구에서 '서시'를 볼 수 있다.

 

 



 

▲ 가이드를 따라 2층에서부터 돌아볼 수 있는데, 가이드의 말이 북한말과 흡사해서 간혹 알아듣기 힘들때도 있었다.

 



 

▲ 연변의 조선족들이 이주해서부터 해방까지의 과정이 인물과 함께 잘 나타나 있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내용을 현지에서 보고 들으니 기분이 묘... 했던 순간!

 

 



 

▲ 윤동주의 죽음

해방을 앞두고 후쿠오카에서 죽은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여 다시한번 장례를 치뤘다고 한다.

오른쪽 아래는 윤동주의 묘 앞에서 찍은 가족들의 사진.

 

 



 

▲ 과거와 현대와의 만남

창 밖으로 현재 용정중학교의 모습이 보인다.

 



 

▲ 체육시간인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는 모습은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만난 테마교실

윤동주의 교실을 재현하여 꾸며 놓았는데,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 단점이.. +___+

 

 


 

▲ 풍금

학교 다닐때 우리 교실에도 풍금이 있었다고 하면... 나이들은거 너무 티날까?

 

 


 

▲ 대성중학교를 나와 이동한 도문의 두만강공원

두만강 주변으로 공원을 조성하였는데 넓고 깔끔해서 많은 현지인들이 주말저녁의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 공원에서 가끔씩 콘서트도 열린다고 한다.

두만강을 찾아온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던 모던함!

 


 

▲ 요기 아래에 바로 두만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바로 저 산이 북한!

 

 


 

▲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할머니들이 옛날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추고 계셨다.

 



 

▲ 조선족인지, 한국분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이 분들은 어쩌면 실향민 이었을 지도...

 

 


 

▲ 두만강을 반으로 갈라 반은 중국, 반은 북한소유라고 한다.

그러니까 강만 건너면 바로 북한인 것이다.

 




 

▲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

 

 



 

▲ 두만강에서는 유람선도 탈 수 있다. 무섭게만 느껴지는 북한땅을 바로 옆에 두고서 말이다!

 

 



 

▲ 앞에 보이는 땅이 북한.

여기까지 오기가 불가능 한 일이겠지만, 북한에서 이 강을 넘으면 탈북이 되는 것.

 

 

 

 

 

▲ 그리하여 우리도 유람선에 오르고...(하나투어 패키지에 포함)

 

 

 

 

 

▲ 유람선.... ^^;;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놀랐다.

 

 

 


 

▲ 두만강은 더이상 푸르지 않았고, 노젓는 뱃사공도 필요하진 않았다.

 

 


 

▲ 북한과 바로 연결된 다리

 

 


 

▲ 말로만 듣던, 노래로만 듣던 두만강을 직접 건너보게 될 줄은...

백두산 여행은 일반여행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있었다!

 

 

 


 

▲ 두만강 느껴보기 & 북한 느끼기


 

 

 

 

 

 

 

 

 

 

본 여행은 하나투어의 지원으로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