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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 크메르 군주의 잔인함이 그대로 남아있는뚜올슬랭 학살박물관 (Tuol Sleng Genocide Musem) - 스티커in캄보디아



오늘은 쵸큼 무거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해요

잔인하고 잔혹한 장면이 많아 망설였지만(그나마 많이 걸러낸 게 이정도;;)

캄보디아를 말할때 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바로 영화 킬링필드의 소재가 된

Tuol Sleng Genocide Musem 투올슬랭 학살 박물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1970년대.

크메르 루즈가 집권한 이 시기에 캄보디아는 전체 인구1/3인 200만이 죽는 비극적인 일을 겪게 됩니다.

과거 앙코르 와트라는 찬란한 영광을 구현했던 나라인 동시에

프랑스, 미국 등 많은 나라의 침략과 전쟁을 겪어내야 했던 슬픈 역사의 나라 캄보디아.

하지만 이 일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동족에의해 자행되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는 여자고등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극악무도한 일의 주인공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하던 폴 포트(사진 중앙).

구체제에 대한 반발과 중국의 문화혁명에 자극을 받아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었던 그는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수있는 지식인들을 몰살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Tuol Svay prey라는 이름의 여고였던 이곳을 감옥으로 개조해 비밀수용소로 사용했다고 해요.

   

그가 지식인을 판별해내는 방법은 정말 어이가 없어서 기가막힐 정도더라구요

안경을 쓴 사람, 외국 서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양담배를 피거나,

책을 주었을때 똑바로 든 사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라며), 손에 굳은 살이 없는 사람,

외국인들과 심지어 학생들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지식인이라며 잡아들였다고.

   

   

그 결과 이 시기에 글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 처형되어

현재 캄보디아의 문맹률은 50%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길을 다니다보면 간판에 그림도 같이 그려져 있는걸 확인할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식당은 접시가 그려져 있는 식)

   

   

화창한 햇빛과 푸른 나무 속에서도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던

빛바랜 회색빛 건물들.

   

   

건물의 입구위쪽에는 "Please keep quiet" 라는 글과 함께 이곳의 문맹률을 알려주듯

웃는 얼굴에 빨간색으로 X자가 그려진 표지판을 볼수 있었습니다.

표지판과 상관없이 그 음산한 분위기에 절로 표정이 굳어지는 곳.

   

   

지식인도 등급에 따라 따로 격리되고 투옥기간도 달랐다고 하는데

이곳은 지식이 높거나 거물 정치범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약 1달에서 3달간 갇혀 고문받았던 곳이라고 해요

   

뚜올슬랭이 발견될 당시 14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기도 한데,

그 당시의 사진이 침대맡에 걸려있었습니다 (사진찍어왔지만 패스해드립니다;;)

   

   

커다란 방에는 덩그라니 침대 하나와 오물처리용 철통이 전부.

독방임과 동시에 옴싹달싹 못하도록 침대기둥에 쇠로 묶어놓았다고 하네요

   

   

다른 동으로 이동중에 만난 이 고문도구는 팔을 젖히고

밧줄로 매달아 놓았다가 의식을 잃으면

아래에 보이는 오물통에 담궈 다시 깨우고 매달아 놓는 용도;

   

   

다른 동에선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이 셩별과 수감연도에 따라 전시되어 있었어요

어떤 용도였는지는 모르나, 그 당시 이곳에 수감되고 처형된 사람들 사진을 다 찍어놓았고

그게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이 곳에 수감되었던 사람은 무려 2만명. 그 중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6명이었다고 하네요.

   

   

2만명이 도대체 어느정도인지 가늠조차 안됐는데,

죽은 사람들의 옷만 모아도 산이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

   

   

이건 음식을 만들기위한 절구나 방아가 아니라;

 아래 동그란 부분에 사람 머리를 넣게 하고 

찧어 죽이는 용도의 고문도구였다고.

   

   

이 사진은 많은 책과 방송에 소개되면서 '캄보디아의 눈물'로 불리고 있는 데요,

사진의 주인공은 그 당시 외무장관의 부인이었는데 살아있는 모습이 아닌,

왼쪽에 보이는 머리에 구멍뚫는 고문도구를 이용해 이미 죽은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고 해요

아이를 품은 채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과, 한쪽눈에 맺혀있는 눈물이 기억에 남는 사진.

   

   

또 다른 동으로 이동!

   

   

이 곳은 B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수감해놓았던 곳.

가로 80cm 세로 2m의 크기로 앉을수도 없게 만들어진 비좁은 벽돌방들을 볼수 있었어요

화장실? 그런거 당연히 없구요;; 아마 여름엔 덥고, 겨울엔 냉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겠죠..

창문이 없는 쪽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빛이 안들어 어두웠어요

   

이곳에서 일하며 고문과 살인을 자행하던 이들은

15세 전후의 어린아이들로 인격이 온전히 형성되기도 전인 그 나이에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개념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크메르군주의 살인기계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지식인으로 붙잡혀온 아이들은 이런 모습으로 수감되었다고 하는데,

잘 보시면 발과발이 서로 연결되어 묶여져있는 걸 보실수 있을거예요.

   

   

이 그림은 팔을 뒤로 묶이고, 목과 목을 서로 연결해 구덩에 묻는 모습.

캄보디아의 신화를 그려놓은 벽화에, 지옥부분을 보면

이와 똑같은 장면이 있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갓난 어린 아이들은 훗날 보복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이런 식으로 나무 밑둥에 쳐서 죽였다고 해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림;;

   

   

던져서 사격연습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그 외에도 손톱을 뽑거나 젖꼭지를 도려내는 그림들도 볼수있었지만 잔인해서 패스;;

   

   

맨 마지막 동에서는 희생자들의 유골과 고문 도구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해골로 만들어진 캄보디아의 지도.

   

   

뚜올슬랭 수감시설에서 내다본 바깥 세상의 모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발자국만 내딪으면 만날수 있는

따뜻한 햇빛과 자유를 꿈꾸었을까요?

   

함께한 동생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음산하고 우울한 곳이었지만

저는 캄보디아에 가신다면 꼭 들러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잔혹한 풍경에 말문이 막히고, 화가나고, 마음이 먹먹해질테지만

문득,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한 곳이었던 이유에서입니다.